국화 꽃말은 색에 따라 다릅니다. 1884년 영국 꽃말집은 붉은 국화를 「사랑합니다」, 흰 국화를 「진실」, 노란 국화를 「가볍게 여겨진 사랑」으로 적었고, 일본 자료는 국화 전체의 꽃말을 「고귀」「고결」로 적습니다. 한국에서는 흰 국화가 장례식장의 꽃이라 애도의 뜻으로 먼저 읽힙니다.
국화에는 꽃말보다 오래된 뜻도 있습니다. 매화·난초·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에 들었고, 서리를 이기는 꽃이라 절개와 장수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아래 표로 색깔별 꽃말을 먼저 정리하고, 그 뜻이 어디서 왔는지와 흰 국화가 애도의 꽃이 된 사연을 차례로 짚습니다.
국화 꽃말 한눈에 — 색깔별·나라별
| 색 | 영국 1884년 꽃말집 | 일본 꽃말 | 한국에서 흔한 쓰임 |
|---|---|---|---|
| 흰색 | Truth(진실) | 真実(진실), 慕う(그리워함), 誠実な心(성실한 마음) | 장례·추모의 꽃 |
| 노란색 | Slighted love(가볍게 여겨진 사랑) | わずかな愛(작은 사랑), 破れた心(깨진 마음), 長寿と幸福(장수와 행복) | 국내 소개 글마다 갈림(감사·실망 등) |
| 붉은색 | I love(사랑합니다) | あなたを愛しています(당신을 사랑합니다) | 사랑 |
| 보라색 | — | 私を信頼してください(나를 믿어 주세요), 夢がかなう(꿈이 이루어진다) | — |
| 국화 전체 | Chinese Chrysanthemum — Cheerfulness under adversity(역경 속의 쾌활함) | 高貴(고귀), 高潔(고결), 高尚(고상) | 절개, 장수 |
영국 꽃말은 케이트 그리너웨이 『Language of Flowers』(1884) 원문, 일본 꽃말은 일본 여성지 Oggi(2021)의 정리를 옮겼습니다. 일본 자료는 국화 전체의 꽃말이 황실 문장에서 왔다고 설명하고, 노란 국화의 「작은 사랑」은 서양 꽃말 「slighted love」와 같은 갈래라고 적습니다. 꽃말은 출처마다 갈리므로 선물에 쓸 때는 색을 먼저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서리를 이기는 꽃 · 오상고절
국화가 절개의 상징이 된 데에는 개화 시기가 큰 몫을 했습니다. 다른 꽃이 다 지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할 무렵에 핀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서리를 업신여기며 홀로 지키는 절개라는 뜻입니다. 서리를 이긴다는 오상(傲霜)은 소식(소동파)이 「증유경문(贈劉景文)」에서 국화는 시들어도 서리를 이겨 내는 가지가 있다(菊殘猶有傲霜枝)고 읊은 구절과 통합니다. 오상고절이라는 네 글자가 우리에게 익은 것은 조선의 이정보(1693~1766)가 시조에서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다,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고 노래한 덕입니다.
이 말은 국화의 생리와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국화가 늦게 피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라 대부분의 가을 국화가 밤이 길어져야 꽃눈을 만드는 단일식물(짧은날식물)이기 때문인데, 옛사람들은 그 원리를 몰랐어도 결과는 정확히 관찰했습니다. 남들이 다 핀 봄에 잎만 키우다가, 남들이 다 진 가을에야 꽃을 여는 이 순서에서 세상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 이의 이미지를 읽어 낸 것입니다. 개화의 과학은 국화는 왜 가을에 피나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국화가 지닌 뜻
- 오상고절(傲霜孤節): 서리를 이기고 홀로 지키는 절개
- 사군자의 가을: 매화·난초·국화·대나무 가운데 가을 자리
- 은일(隱逸): 세상을 피해 사는 은자의 꽃
- 장수: 중양절 국화주와 국화차의 배경
- 애도: 흰 국화의 현대적 쓰임
사군자의 가을 자리
사군자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 넷을 군자에 빗댄 것으로, 각각 사계절을 하나씩 맡습니다. 배정은 자료마다 조금씩 달라 매화를 봄에 두기도 하고 추위 속에 먼저 핀다 하여 늦겨울에 두기도 하지만, 국화의 자리는 어느 배정에서나 가을입니다. 한국에서도 국화는 오래전부터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의 하나로 소중히 여겨졌습니다.
문인화에서 국화를 그리는 일이 유난히 많았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문인화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뜻을 그리는 그림이었고, 국화는 절개와 은일이라는 뜻을 한 번에 실어 보낼 수 있는 소재였습니다. 여기에 실용적인 이유도 겹칩니다. 사군자는 그림의 소재이면서 동시에 붓 다루기를 익히는 교본이었는데, 그중 국화는 겹겹이 포개진 꽃잎 때문에 붓의 농담을 훈련하기에 좋은 대상이었습니다. 그림 속 국화 옆에 바위가 함께 놓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변치 않음의 뜻을 겹쳐 강조한 구성입니다.
도연명과 은일 ·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를 은자의 꽃으로 못박은 사람은 동진의 시인 도연명입니다. 관직을 버리고 시골로 돌아간 그가 「음주」 다섯째 수에 남긴 구절이 채국동리하 유연견남산(采菊東籬下 悠然見南山)입니다.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꺾다가 문득 남산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이 두 구는 떼어 읽으면 반쪽이 됩니다. 국화를 꺾는 행위와, 그러다 무심히 눈을 드는 그 여유가 함께 있어야 은일의 자세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북송의 주돈이(周敦頤, 자는 무숙)는 애련설에서 여러 꽃의 성격을 나누며 국화지은일자야(菊花之隱逸者也), 국화는 꽃 중의 은일자라고 적었습니다. 같은 글에서 그는 도연명 이후로 국화를 사랑하는 이가 드물다고도 했으니, 도연명이 놓은 자리를 육백여 년 뒤에 다시 확인해 준 셈입니다. 화려함으로 사람을 부르는 꽃이 아니라, 사람을 피해 물러난 자리에서 피는 꽃이라는 이미지입니다.
중양절 · 국화주를 들고 산에 오르다
국화가 뜻으로만 남지 않고 생활 속으로 들어온 자리가 중양절입니다. 음력 9월 9일, 양의 수인 9가 겹치는 이날 중국에서는 국화주를 마시고 수유 가지를 몸에 지닌 채 높은 곳에 오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간에서 9월 9일에 국화주를 담가 마시는 풍습이 이어졌습니다. 국화 꽃잎을 찹쌀 반죽에 얹어 지지는 국화전도 이 무렵의 세시 음식입니다.
이 풍습에는 국화를 장수의 꽃으로 보는 관념이 깔려 있습니다. 서리에도 지지 않는 성질이 곧 장수의 상징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앞서 살핀 절개와 은일이 선비의 덕목이었다면, 장수는 국화가 민간에서 얻은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화차 · 마시는 국화
국화를 마시는 문화는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국화차에는 감국(甘菊)과 차용으로 기른 국화가 쓰이고, 꽃을 통째로 말려 우려냅니다. 감국은 이름에 달 감(甘) 자가 들어가지만 약재 규격에는 맛이 쓰다고 적혀 있으니, 이름만 보고 단맛을 기대할 일은 아닙니다. 비슷한 노란 꽃을 피우는 산국은 감국과 다른 식물입니다. 들에서 딴 꽃보다 식용으로 파는 국화차를 쓰는 편이 안전합니다. 두 꽃을 구별하는 방법은 국화 종류 총정리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덧붙이자면 야생의 꽃을 직접 채취해 먹는 것은 비슷한 식물을 잘못 알아보고 먹을 위험이 있습니다. 식용으로는 시판 건조 감국을 쓰는 편이 안전합니다.
흰 국화는 왜 애도의 꽃이 되었나
먼저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우리 전통 장례에도 꽃 장식은 있었습니다. 상여에 종이꽃을 다는 꽃상여가 그 예입니다. 다만 장례식장 제단을 흰 국화로 꾸미고 조문객이 생화를 바치는 지금의 방식은 그 전통과 다른 근현대의 관행입니다. 그래서 이 질문은 동아시아 밖, 유럽 쪽 이야기부터 보는 편이 이해가 쉽습니다.
국화가 유럽에 건너간 것은 18세기 말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국화는 무덤의 꽃이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1월 1일 만성절(모든 성인의 날, 투생)에 가족 묘지를 찾는데, 그 계절에 피어 있는 꽃이 국화였기 때문입니다. 이 관습이 널리 퍼진 계기로 프랑스 매체들은 1919년을 꼽습니다. 1차 세계대전 휴전 1주년이던 그해 11월 11일, 레몽 푸앵카레 대통령이 전사자 무덤에 꽃을 바치도록 요청했고, 11월에도 피어 있고 서리를 견디는 국화가 그 꽃이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묘지에 국화를 두는 관습이 그해 처음 시작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관습이 일본과 한국의 장례에 어떤 경로로 전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도 장례에 흰 국화를 쓰게 된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개화 시기로 돌아옵니다. 서리를 이기고 늦게 피는 그 성질이 동쪽에서는 절개를 만들었는데, 서쪽에서는 바로 그 성질이 애도를 만들었습니다. 다른 꽃이 다 진 11월에도 남아 있는 꽃이라는 사실 하나가, 한쪽에서는 굽히지 않는 선비가 되고 다른 쪽에서는 무덤을 지키는 꽃이 된 것입니다.
흰 국화가 우리 장례에 자리 잡을 만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흰빛이 동아시아에서 상복의 색이라는 점, 국화의 개화기가 조상을 기리는 가을과 겹친다는 점, 그리고 국화가 다른 꽃보다 오래 형태를 유지한다는 실용적인 이유입니다. 장례 기간 내내 시들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꽃이라는 점은 애도의 자리에서 큰 미덕입니다. 덧붙이면 국화를 장례 전용으로 여기는 것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그리고 한국과 일본 쪽 이야기이고, 미국과 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영국에서 1차 세계대전 전사자를 기리는 꽃은 국화가 아니라 붉은 양귀비입니다.
같은 꽃이 색에 따라 뜻을 나누어 갖는다는 점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흰 국화가 애도를 맡는 동안 붉은 국화는 사랑으로 읽히고, 노란 국화는 자료마다 갈립니다. 색깔별 꽃말은 글 첫머리 표에 정리했습니다. 국화를 선물할 일이 있다면 색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국화라는 식물의 전체 그림은 국화 완전 가이드에서, 가을 축제에서 만나는 작품 국화는 2026 국화축제 일정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국화의 꽃말은 색에 따라 어떻게 다른가요?
흰 국화는 애도와 그리움, 붉은 국화는 사랑으로 읽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노란 국화는 감사로도, 실망이나 이별로도 읽혀 자료마다 갈립니다. 국화 전체로는 절개와 고결, 장수의 뜻을 지닙니다. 선물할 때는 색을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사군자에서 국화는 어떤 계절을 맡나요?
가을입니다. 계절 배정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국화의 자리는 언제나 가을입니다. 국화가 가을 자리에 든 것은 서리 내릴 무렵에 피는 성질 때문이며, 여기서 서리를 이기는 절개라는 뜻의 오상고절이 나왔습니다.
Q. 중양절에 국화주를 마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는 국화주를 마시고 수유를 지닌 채 높은 곳에 오르는 풍습이 있었고, 우리 민간에서도 이날 국화주를 담가 마셨습니다. 서리에도 지지 않는 국화의 성질을 장수의 상징으로 본 관념이 배경입니다.
Q. 병문안에 국화를 가져가도 되나요?
흰 국화는 피하십시오. 장례를 곧장 연상시킵니다. 국화 자체를 병실에서 꺼리는 분도 있으니, 마음이 쓰인다면 다른 꽃을 고르는 편이 안전합니다. 프랑스처럼 국화를 묘지의 꽃으로 여기는 나라에서도 국화 선물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참고 출처
- Kate Greenaway, 『Language of Flowers』, 1884 — Chrysanthemum(Red·White·Yellow·Chinese) 항목. 프로젝트 구텐베르크 #31591 (2026-10-09 확인)
- Oggi.jp, 「菊の花言葉って怖いの? 色別の意味や由来…」(2021-12-10) — 국화 전체와 색깔별 꽃말
- The Connexion, 「Why chrysanthemums are the French flower of the dead」 — 1919년 11월 11일 푸앵카레 대통령의 전사자 묘 헌화 요청
이미지 출처
- 뤼지 〈계화와 국화 사이의 새〉 · Lü Ji · Public domain · Wikimedia Commons
- 국화차 · gliuoo · CC BY-SA 2.0 · Wikimedia Commons
- 흰 국화 · Gowrivemban · CC0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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