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는 왜 가을에 피나 — 단일식물과 광주기의 과학

봄부터 여름까지 잎만 무성하던 국화가 가을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꽃을 엽니다. 달력을 보는 것도 아닌데 국화는 가을을 어떻게 알까요. 답은 뜻밖에도 꽃이 아니라 밤에 있습니다. 국화는 밤의 길이를 재는 식물입니다. 이 글은 국화 개화의 과학과, 그 원리를 뒤집어 일 년 내내 국화를 피워 내는 농가의 기술을 정리합니다.

활짝 핀 국화 꽃송이
봄여름 내내 잎만 키우던 국화는 가을이 되어서야 꽃을 연다. 그 신호는 낮이 아니라 밤의 길이다.

단일식물이라는 것 · 낮이 아니라 밤을 잰다

식물이 계절을 아는 가장 확실한 달력은 온도가 아니라 빛의 길이, 곧 일장(日長)입니다. 온도는 해마다 들쑥날쑥하지만 낮과 밤의 길이는 어김없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낮이 짧아질 때, 정확히는 밤이 일정 시간보다 길어질 때 꽃눈을 만드는 식물을 단일식물(短日植物)이라 부릅니다. 국화는 그 대표 격입니다. 가을에 피는 국화 품종은 대체로 낮이 13~14시간 아래로 줄어들면 꽃눈을 만들기 시작하고, 낮이 더 짧아지는 동안 그 꽃눈이 자라 꽃이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단일'이라는 이름과 달리 식물이 실제로 재는 쪽은 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증거가 뒤에서 소개할 광중단입니다. 긴 밤의 한가운데를 전등 빛으로 잠깐 끊어 주기만 해도 국화는 꽃눈 만들기를 멈춥니다. 낮의 길이는 그대로인데도 그렇습니다. 국화에게 중요한 것은 끊기지 않은 어둠의 길이인 셈입니다.

국화 개화의 핵심 숫자 (중부지방 추국 기준 · 품종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 화아분화가 시작되는 일장: 약 13.5~14시간 이하
  • 화아분화 적온: 야간 18도 안팎 (24도를 넘거나 15도 아래로 내려가면 지연)
  • 꽃눈 발달과 개화: 일장이 더 짧아질수록 잘 진행
  • 화아분화에서 개화까지: 약 8~10주
  • 자연 화아분화 시기: 8월 하순~9월 상순
  • 자연 개화기: 10월 하순

숫자로 보는 국화의 가을 · 일장과 온도

가을 국화의 개화는 스위치처럼 한 번에 켜지는 것이 아니라 단계를 밟습니다. 일장이 13.5~14시간 아래로 내려가면 줄기 끝의 생장점이 잎 만들기를 멈추고 꽃눈 만들기로 전환합니다. 이것이 화아분화입니다. 그 뒤 낮이 더 짧아지는 동안 꽃눈이 자라 봉오리가 되고, 마침내 꽃이 핍니다.

국화 일장 시간표 8월부터 11월까지 일장이 14시간, 13시간, 12시간으로 줄며 꽃눈 분화와 개화로 이어지는 관계를 보여줍니다. 국화는 낮의 길이가 짧아질수록 꽃눈을 만듭니다 일장(시간) 141312 13.5~14시간 · 꽃눈 분화 임계야간 18도 안팎 필요13시간 · 꽃눈 형성12시간 · 개화 8월9월10월11월 8월 25일 무렵자연 꽃눈 분화10월 25일 전후자연 개화
일장은 8월 초에 이미 조건을 채우지만, 한여름 고온이 걷히는 8월 하순에 화아분화가 시작되어 8~10주 뒤 꽃이 핀다.

그런데 이 시간표를 한국 달력에 겹쳐 보면 어긋나는 데가 있습니다. 서울 기준으로 일장이 14시간 아래로 내려가는 때는 8월 초순입니다. 8월 하순이면 이미 13시간 남짓이고, 국화가 실제로 피는 10월 하순은 11시간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일장만 따지면 8월 초에 벌써 꽃눈을 만들기 시작해야 하는데, 자연 상태의 화아분화는 8월 하순에야 시작됩니다.

빠진 조건은 온도입니다. 화아분화에 알맞은 야간 온도는 18도 안팎이고, 24도를 넘으면 분화가 지연됩니다. 한여름의 열대야가 바로 그 브레이크입니다. 밤은 이미 충분히 길어졌는데 너무 더워서 국화가 시동을 걸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위가 한풀 꺾이는 8월 하순에 이르러 두 조건이 함께 맞고, 거기서부터 개화까지 여덟 주에서 열 주가 걸립니다. 8월 하순에 시작된 준비가 10월 하순의 꽃으로 나오는 것은 일장 곡선 하나가 아니라 이 계산의 결과입니다.

8월 하순, 보이지 않는 개화가 시작된다

그러니 국화의 개화는 우리가 꽃을 보는 10월이 아니라 한여름 끝자락인 8월 하순에 이미 시작됩니다. 겉보기에는 아무 변화가 없지만, 생장점 안에서는 잎이 될 조직이 꽃이 될 조직으로 바뀌는 중입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화아분화는 일장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야간 온도가 18도 안팎일 때 가장 잘 진행되고, 24도를 넘거나 15도 아래로 떨어지면 지연됩니다. 밤의 길이와 온기가 함께 맞아야 꽃눈이 만들어진다는 뜻입니다.

재배하는 처지에서 이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꽃눈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뒤에 줄기 끝을 자르면 그해 꽃을 놓치기 쉽습니다. 잘린 자리 아래에서 곁눈이 다시 자라 늦게라도 꽃눈을 만들 수는 있지만, 노지에서는 추위가 먼저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심(순지르기)을 7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끝내라는 재배 지침은 이 시계에 맞춘 것입니다. 8월 중순까지 미루면 늦습니다. 순을 지른 자리에서 올라온 곁가지가 꽃눈을 만들려면 성숙한 잎을 일곱 장 남짓 갖추어야 하는데, 8월 중순에 자르면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실전 요령은 국화 키우는 법 편에서 이어집니다.

거꾸로 이용하기 ① 차광재배 · 개화를 앞당긴다

국화가 밤의 길이로 계절을 읽는다면, 밤을 인공으로 만들어 계절을 속일 수도 있습니다. 여름에 검은 차광막을 해가 지기 전에 덮고 이튿날 아침 늦게 걷어 하루의 어둠을 13시간 안팎까지 늘리면, 국화는 가을이 온 줄 알고 꽃눈을 만듭니다. 해가 진 뒤에 덮어서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날의 낮은 이미 다 지나간 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차광재배이며, 가을 꽃을 여름에 앞당겨 피우는 기술입니다.

온실 안에 줄지어 자라는 국화
온실에서 기르는 국화(1962년, 핀란드 키르코눔미). 시설재배는 빛을 다뤄 개화기를 옮긴다.

거꾸로 이용하기 ② 전조재배 · 개화를 늦춘다

반대로 개화를 늦추려면 밤을 부수면 됩니다. 전조재배는 전등으로 밤을 짧게 만드는 기술인데, 방식이 두 갈래입니다. 해가 진 뒤부터 초저녁에 불을 밝히는 초야 전조가 하나, 그리고 자정 전후에 한두 시간 불을 켜는 심야 전조, 곧 광중단(光中斷)이 다른 하나입니다.

차광재배와 전조재배 비교24시간 막대로 차광재배의 긴 어둠과 전조재배의 밤 조명 및 광중단이 개화 시기를 다르게 만드는 것을 비교한다. 빛을 다루면 개화 시기가 달라집니다 차광재배전조재배 해 지기 전에 덮고 아침 늦게 걷기초야 전조 또는 광중단 어둠 13시간 안팎긴 밤한두 시간 점등긴 밤 → 긴 어둠을 만들어 개화 앞당김→ 초야 전조 또는 자정 전후 한두 시간 점등: 개화 늦춤 긴 밤 하나가 짧은 밤 두 개로 셈해진다 0시24시0시24시
차광재배는 어둠을 늘려 개화를 앞당기고, 전조재배는 밤에 빛을 넣어 개화를 늦춘다.

광중단은 광주기 과학의 정수라 할 만합니다. 긴 밤 전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한가운데를 잠깐 끊기만 해도, 국화는 그 밤을 짧은 밤 두 개로 셈해 꽃눈 만들기를 멈춥니다. 전기를 조금만 쓰고도 개화를 늦출 수 있으니 농가로서는 경제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겨울 꽃집의 국화, 계절을 가리지 않는 장례용 흰 국화의 공급은 차광과 전조라는 이 두 기술이 떠받치고 있습니다.

베란다에서 겪는 광주기 사고

이 원리는 집에서 국화를 기를 때 뜻밖의 함정이 됩니다. 가을이 왔는데 베란다 국화에 꽃봉오리가 도무지 맺히지 않는다면, 밤마다 켜 두는 거실 불빛이나 창밖 가로등을 의심해 볼 만합니다. 농가가 일부러 하는 전조재배를 우리 집 조명이 본의 아니게 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꽃눈이 만들어지는 8월 하순부터는 국화 화분을 밤에 어두운 자리로 옮겨 주는 것만으로 개화가 살아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밤 조명과 국화 꽃눈 밤 조명을 켠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비교해 밤의 어둠이 국화 꽃눈에 필요한 이유를 보여줍니다. 8월 하순부터, 밤은 어둡게 불빛을 켜는 자리밤에 어두운 자리 꽃눈 없음 꽃눈 맺힘 가로등 · 거실 불빛
밤에 빛이 닿는 자리의 화분은 봉오리를 맺지 못한다. 8월 하순부터는 어두운 자리로 옮긴다.

국화 종류에 따라 이 민감도는 다릅니다. 크기와 화형의 구분은 국화 종류 총정리에서, 국화라는 식물의 전체 그림은 국화 완전 가이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국화 개화에 결정적인 것은 낮 길이인가요, 밤 길이인가요?

밤의 길이입니다. 단일식물이라는 이름 때문에 낮이 기준처럼 보이지만, 긴 밤의 한가운데를 전등으로 잠깐 끊는 광중단만으로 개화가 억제되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국화에게 중요한 것은 끊기지 않은 어둠이 일정 길이를 넘느냐입니다. 추국은 대체로 밤이 열 시간을 넘어서면 꽃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Q. 베란다 국화에 봉오리가 안 맺히는 이유가 뭔가요?

밤 조명을 먼저 의심해 보십시오. 거실 불빛이나 가로등이 밤을 끊으면 전조재배와 같은 효과가 나서 꽃눈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화아분화가 시작되는 8월 하순부터는 밤에 어두운 자리로 옮겨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 밖에 늦은 순지르기로 꽃눈을 잘라 냈거나 볕 자체가 부족한 경우도 있습니다.

Q. 꽃집에는 왜 사시사철 국화가 있나요?

농가가 빛으로 계절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여름에는 차광막으로 밤을 늘려 개화를 앞당기고, 겨울에는 심야에 전등을 켜는 광중단으로 개화를 늦춥니다. 이 개화 조절 기술 덕에 국화는 연중 출하가 가능한 몇 안 되는 꽃이 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1. 활짝 핀 국화 · Dolon Prova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2. 온실에서 기르는 국화 (핀란드 키르코눔미) · Erkki Voutilainen · CC BY 4.0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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