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 이름의 함정, 같은 이름으로 팔리는 다른 식물들

약재상 좌판에 뿌리 두 무더기가 놓여 있습니다. 둘 다 이름표에 같은 글자가 적혀 있고, 둘 다 말려서 썰어 놓은 상태이며, 색과 결도 비슷합니다. 그런데 두 무더기는 과(科)가 다른 식물입니다. 하나는 마디풀과이고 다른 하나는 협죽도과입니다. 메밀과 한집안인 것과 협죽도와 한집안인 것이 같은 이름표를 달고 나란히 놓여 있는 셈입니다.

약초를 찾아보는 사람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효능이 아니라 이 지점입니다. 이름이 식물을 특정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누가 속이려 들어서만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약초의 이름은 서로 다른 네 개의 층에서 따로 만들어지고 따로 굴러갑니다. 그 층들이 어긋나는 자리에서 다른 식물이 같은 이름으로 유통됩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주요 분류군
국명(표준)공정서 한약재명주요 유통명현행 정명 학명
약모밀어성초어성초Houttuynia cordata Thunb.
삼백초과
삼백초삼백초삼백초Saururus chinensis (Lour.) Baill.
삼백초과
초석잠없음초석잠·골뱅이형Stachys affinis Bunge
꿀풀과
석잠풀없음초석잠으로 혼입 유통Stachys riederi var. japonica (Miq.) H.Hara
꿀풀과
쉽싸리택란누에형 초석잠Lycopus lucidus Turcz. ex Benth.
꿀풀과
참당귀당귀당귀·토당귀Angelica gigas Nakai
산형과
일당귀일당귀당귀Angelica acutiloba (Siebold & Zucc.) Kitag.
산형과
오갈피나무오가피오가피Eleutherococcus sessiliflorus (Rupr. & Maxim.) S.Y.Hu
두릅나무과
가시오갈피자오가가시오가피Eleutherococcus senticosus (Rupr. & Maxim.) Maxim.
두릅나무과
더덕없음더덕Codonopsis lanceolata (Siebold & Zucc.) Benth. & Hook.f. ex Trautv.
초롱꽃과
도라지길경도라지Platycodon grandiflorus (Jacq.) A.DC.
초롱꽃과
뚱딴지없음돼지감자 · 국우Helianthus tuberosus L.
국화과
큰조롱백수오백하수오Cynanchum wilfordii (Maxim.) Hook.f.
협죽도과
Vincetoxicum 로 옮기는 흐름 있음
하수오하수오적하수오Pleuropterus multiflorus (Thunb.) Turcz. ex Nakai
마디풀과 · POWO 기준
GBIF는 Reynoutria multiflora를 정명으로 둔다

학명은 Plants of the World Online(Kew)과 국가표준식물목록으로 2026년 8월 확인한 값입니다.

안전 안내
  • 야생 개체를 직접 캐어 쓰지 않습니다. 관찰 대상으로 두고, 이용은 재배품과 정식 유통품으로 합니다. 황칠나무 자생지는 불법 수액 채취로 인한 피해를 이유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국립산림과학원, 2020년).
  • 이엽우피소는 간독성이 확인되어 식품 원료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식품 원료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과 한약재로 규정돼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제도의 판단이며, 이엽우피소는 국내에서 백수오의 기원식물도 아닙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7년 8월 22일 독성시험 결과를 발표하며 이 원료의 불인정 상태를 유지한다고 밝혔습니다.
  • 백수오는 열수추출한 원료로만 식품에 쓰도록 제한됐다(식품의약품안전처, 2017년 8월 22일). 원물 분말을 그대로 섭취하지 말라는 취지입니다.
  • 적하수오는 임상적으로 명백한 급성 간손상이 다수 보고돼 있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 LiverTox 자료에 기재된 내용입니다. 피로와 메스꺼움, 오른쪽 윗배 통증으로 시작해 소변이 짙어지고 황달이 오는 경과가 보고돼 있습니다. 한 번 손상이 있었던 사람이 다시 복용하면 재발하며, 그때는 발병까지 걸리는 시간이 더 짧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하수오 편에서 따로 다룹니다.
  • 종자를 팔 때 품종명 등 품질표시는 종자산업법상 의무이며, 표시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표시하면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 대상입니다. 등록하지 않고 종자업을 한 경우는 이와 별개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합니다.
  • 지병이 있거나 복용 중인 약이 있으면 전문가와 상의할 것. 이 글은 식물을 식별하기 위한 정보이며, 섭취 권유나 치료 결정이 아닙니다.

약초 이름은 네 층으로 되어 있다

하나의 약초에 붙는 이름은 보통 하나가 아닙니다. 성격이 다른 네 종류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첫째는 학명입니다. 국제 규약에 따라 속명과 종소명, 명명자로 구성됩니다. 다만 한 식물에 이름이 하나뿐인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 쓰인 이명이 여럿 남아 있고, 어느 것을 정명으로 채택하는지는 분류 체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둘째는 국명입니다. 국가표준식물목록이 통일된 사용을 위해 제시하는 표준 우리말 이름입니다. 큰조롱, 약모밀, 뚱딴지가 여기에 속합니다. 한 학명에 표준 국명 하나를 맞추는 것이 목적이지만, 지역마다 달리 부르는 이름은 그것대로 따로 살아 있습니다.

셋째는 공정서명, 곧 한약재명입니다. 대한민국약전과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이 규정하는 이름입니다. 여기서는 식물이 아니라 약으로 쓰는 부위가 이름의 대상이 됩니다. 도라지라는 식물의 뿌리를 길경이라 부르고, 쉽싸리라는 식물의 지상부를 택란이라 부르는 식입니다. 그래서 국명과 공정서명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넷째는 유통명입니다. 시장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여기에는 규칙이 없습니다. 생김새, 산지, 가격대, 심지어 마케팅 문구가 이름이 됩니다.

문제는 이 네 층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는 데 있습니다. 학명은 분류학 연구를 따라 바뀌고, 공정서명은 법령 개정을 따라 바뀌며, 유통명은 시장을 따라 바뀝니다. 국명은 그 중간에서 잘 바뀌지 않습니다. 층마다 시계가 다르니 언젠가는 어긋납니다. 그리고 어긋난 자리가 곧 다른 식물이 같은 이름으로 들어오는 자리입니다.

약초 이름의 네 층 한 식물에 붙는 학명, 국명, 공정서명, 유통명의 네 층을 위에서 아래로 보여 줍니다. 공정서명은 약으로 쓰는 부위를 대상으로 하며, 공정서명과 유통명에서 어긋남이 생길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약초 이름의 네 층 한 식물에 붙는 이름은 만드는 주체와 바뀌는 속도가 서로 다르다 이름의 층 만드는 주체 바뀌는 속도 1 학명 국제 규약 분류학 연구를 따라 바뀐다 2 국명 국가표준식물목록 잘 안 바뀐다 3 공정서명 (한약재명) 약전 법령 개정을 따라 바뀐다 식물이 아니라 「약으로 쓰는 부위」가 대상 4 유통명 시장 규칙이 없다 어긋남은 주로 이 두 층에서 드러난다 실례: 도라지 학명 Platycodon grandiflorus 국명 도라지 공정서명 길경 (뿌리) 공정서명은 뿌리를 가리킨다 유통명 도라지 · 백도라지 시장에서는 여러 이름이 함께 쓰일 수 있다 같은 식물을 가리켜도, 이름의 기준과 대상은 층마다 다릅니다.
약초 하나에 붙는 이름은 층마다 만드는 주체가 다르고 바뀌는 속도도 다릅니다. 어긋남은 주로 공정서명과 유통명 층에서 드러나지만, 학명 층에서도 생긴다.

같은 이름, 다른 식물, 확인된 사례들

어성초와 삼백초, 기관이 직접 지목한 사례

둘은 같은 삼백초과에 속하지만 속이 다른 별개의 식물입니다. 어성초는 약모밀(Houttuynia cordata Thunb.)의 한약재명입니다. 반면 삼백초(Saururus chinensis (Lour.) Baill.)는 식물 국명이자 한약재명입니다. 둘 다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에 각각 별개 품목으로 올라 있습니다.

그런데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6년 3월 9일 육안 구별이 어려운 식품원료 45종의 유전자 진위판별법을 개발해 배포했습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부정 대체 사례로 "어성초 대신 삼백초를 사용하는 경우"를 명시적으로 지목했습니다. 함께 든 다른 예가 대하 대신 흰다리새우였습니다. 같은 성격의 문제로 본 것입니다. 충청북도농업기술원도 삼백초 자료에 같은 취지를 적어 두었습니다. 약모밀과 "혼동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완전히 다른 식물이므로 주의가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초석잠, 이름 하나에 학명 셋

이 사례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초석잠이라는 이름은 한약재명이 아닙니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생약종합정보에서 초석잠을 검색하면 등재된 품목이 없습니다. 대신 초석잠은 2017년 국가표준재배식물목록에 오른 재배식물 이름입니다.

산림청 국립산림품종관리센터가 2018년 5월 17일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제목은 「알쏭달쏭한 초석잠의 실체는?」이고, 식물표본으로 실체를 확인한 결과였습니다. 시중에서 초석잠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것이 세 가지였습니다. 골뱅이 모양으로 비대해지는 초석잠, 길쭉한 누에 모양으로 비대해지는 쉽싸리, 덩이뿌리 자체가 없는 석잠풀입니다.

이 가운데 공정서에 정식으로 올라 있는 것은 쉽싸리 하나뿐이며, 그 이름은 초석잠이 아니라 택란입니다. 게다가 대한민국약전이 택란으로 규정한 약용 부위는 지상부인데, 누에형 초석잠으로 팔리는 것은 뿌리줄기입니다. 식물이 맞아도 부위가 다릅니다. 산림청은 같은 자료에서 한 가지를 덧붙였습니다. 종자를 팔 때 식물명을 정확히 표시하는 것은 법적 의무라는 것입니다.

당귀, 한 이름, 세 학명, 세 나라 약전

당귀만큼 이름과 실체의 어긋남이 제도화된 사례도 드뭅니다. 같은 한자명 當歸에 나라마다 다른 기원식물이 규정돼 있습니다.

약전「당귀」의 기원식물
대한민국약전참당귀 Angelica gigas Nakai 의 뿌리
일본약국방일당귀 Angelica acutiloba Kitag. 및 그 변종 var. sugiyamae Hikino
중국약전Angelica sinensis (Oliv.) Diels

한국은 여기에 더해 일당귀를 별도 품목으로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에 따로 올려 두었습니다. 국내에서 당귀와 일당귀는 법적으로 다른 한약재라는 뜻입니다. 중국당귀는 국내에서 한약재가 아닙니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셋 다 그냥 당귀로 불립니다.

국경을 넘으면 어긋남이 더 커집니다. 백수오가 그렇습니다. 한국은 백수오의 기원식물을 큰조롱 하나로 못박고, 이엽우피소는 식품 원료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국 본초 문헌은 白首烏의 기원식물로 우피소(牛皮消)와 극엽우피소(戟葉牛皮消, Cynanchum bungei)를 싣습니다. 앞의 우피소가 라틴명으로 Cynanchum auriculatum인데, 이것이 곧 이엽우피소입니다.

2015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짧게 짚어 둡니다. 그해 봄 한국소비자원이 시중 백수오 제품을 조사해 상당수에서 이엽우피소가 나왔다고 발표했고, 대규모 회수로 이어졌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그때 가짜로 회수된 그 식물이, 국경 너머에서는 백수오 그 자체입니다. 게다가 중국 쪽 별명에 백하수오(白何首烏)가 들어 있어 우리말 이름과 표기까지 겹칩니다. 어느 한쪽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두 나라가 각자의 약전과 본초 전통 위에서 같은 이름에 다른 식물을 배정한 것입니다. 수입과 유통이 국경을 넘나드는 동안, 이름만 따라옵니다.

이 셋이 실제로 다르다는 점은 학술적으로도 확인돼 있습니다. 대한한의학회지 32권 4호에 정리가 있습니다. Angelica sinensisA. acutiloba는 비교적 유사합니다. 그러나 A. gigas는 주요 활성성분과 유전적 형태에서 나머지 둘과 상당히 다르다고 기술합니다. 이름은 하나인데 성분 구성이 갈립니다.

오가피와 가시오가피, 숫자가 남은 사례

이 쌍에는 실측 결과가 있습니다. 김정훈 등이 한국약용작물학회지 23권 6호(2015)에 실은 유통 한약재 오가피 판별 연구입니다. 엽록체 DNA와 nrDNA ITS 염기서열로 유통 시료 11건을 분석했습니다.

11건 가운데 7건은 오갈피나무로 확인됐고, 그중 3건은 가시오가피로 표기해 판매된 것이었습니다. 나머지 4건은 연구 대상 5종 어느 것으로도 동정되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이 결과가 1997년 선행 연구와 이어진다고 적었습니다. 국내 가시오가피 시중품 대부분이 지리산오갈피와 오갈피나무의 껍질이라는 보고였습니다.

제도 쪽에도 틈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약전은 오가피의 기원을 "오갈피나무 또는 기타 동속식물"로 규정합니다. 기원이 특정 종으로 못박히지 않고 속 전체로 열려 있습니다. 반면 가시오갈피는 자오가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에 따로 올라 있고, 약용 부위도 다릅니다. 오가피는 뿌리껍질과 줄기껍질이고, 자오가는 뿌리와 뿌리줄기입니다.

더덕과 도라지, 그리고 잔대

더덕과 도라지는 같은 초롱꽃과의 다른 속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둘 다 공정서 생약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생약종합정보에서 더덕을 검색하면 결과가 없고, 도라지도 없습니다. 도라지는 길경이라는 이름으로만 올라 있고, 더덕은 아예 공정서 바깥의 식품·농산물입니다. 여기에 잔대(Adenophora triphylla var. japonica)가 끼어듭니다. 같은 초롱꽃과이고 뿌리가 닮았습니다. 한약재명 사삼(沙蔘)의 기원식물이 바로 이 잔대인데, 시장에서는 더덕을 사삼이라 부르는 일이 흔합니다. 공정서에서 더덕에 해당하는 이름은 사삼이 아니라 양유(羊乳)입니다.

혼동의 근거는 기관 발표로 확인됩니다. 농촌진흥청은 2023년 12월 도라지·더덕·잔대의 표준유전체를 해독하고 판별 분자표지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개발 배경으로 든 것이 "값 싼 수입 도라지가 인삼, 잔대, 더덕으로 판매된 사례도 있어"는 사실입니다. 도라지와 더덕을 가르는 표지 3종, 도라지와 잔대 2종, 더덕과 잔대 1종이 개발됐고 일부는 특허 등록 후 기술이전됐습니다.

유사종 감별 포인트

아래 특징은 살아 있는 식물이나 가공 전 상태를 관찰할 때 쓰는 것입니다. 사진이나 겉모습만으로 식용·약용 여부를 판단해 섭취해서는 안 됩니다. 잘리고 마른 약재에서는 이 특징들이 대부분 사라집니다.

구분갈리는 형질
약모밀(어성초) / 삼백초약모밀은 잎·줄기를 문지르면 생선 비린내가 납니다. 이 냄새의 원인은 휘발성 정유 성분이며, 증류나 가공을 거치면 그 정유가 날아가 냄새가 사라집니다. 삼백초는 꽃차례 근처 위쪽 잎 두세 장이 흰색으로 변하는데, 약모밀에는 이 현상이 없습니다.
초석잠 / 쉽싸리 / 석잠풀뿌리줄기 모양이 갈립니다. 초석잠은 골뱅이 모양, 쉽싸리는 길쭉한 누에 모양, 석잠풀은 비대한 덩이뿌리 자체가 없습니다.
참당귀 / 일당귀꽃 색이 갈립니다. 참당귀는 적자색, 일당귀는 흰색입니다.
오갈피나무 / 가시오갈피가시 밀도가 갈립니다. 가시오갈피는 바늘 같은 가시가 줄기를 빽빽하게 덮습니다. 다만 껍질로 가공되면 이 형질은 사라집니다.
더덕 / 도라지뿌리 표면의 결이 갈립니다. 더덕은 가로 방향 주름이 겹겹이 쌓여 거칠고, 도라지는 세로 결이 중심이며 단정합니다.

돼지감자, 이 경우는 성격이 다르다

위 사례들과 함께 묶이곤 하지만, 돼지감자는 다른 종류의 문제입니다. 사칭당하는 상대 종이 없습니다. 이름 자체가 분류학적으로 틀렸을 뿐입니다.

돼지감자의 국명 정명은 뚱딴지이고 학명은 Helianthus tuberosus L., 국화과 해바라기속입니다. 반면 감자는 Solanum tuberosum L., 가지과입니다. 둘은 과가 아니라 목(目) 수준에서 다릅니다. 국화목과 가지목입니다. 덩이줄기에 저장물질을 쌓는 형태가 우연히 닮았을 뿐이며, 저장 물질도 감자는 전분이고 돼지감자는 이눌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자명입니다. 돼지감자의 한자명은 菊芋, 곧 국화 토란입니다. 菊은 분류계급을 가리키는 글자가 아니라 국화 종류를 두루 이르는 말입니다. 그래도 이 식물이 국화 쪽에 속한다는 것은 짚고 있습니다. 한글 유통명이 감자 쪽을 가리키는 것과 대조됩니다. 그러니 이 경우는 누가 속인 사건이 아니라 이름이 붙는 과정 자체에서 생긴 오류입니다. 영어 이름 Jerusalem artichoke도 예루살렘과 무관하고 아티초크와도 다른 식물이니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왜 잘리고 말린 약재에서 문제가 커지는가

지금까지 본 사례를 다시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눈에 띕니다. 문제는 부위가 잘리고 말려 유통되는 자리에서 커집니다. 어성초와 삼백초는 지상부로, 당귀와 더덕은 뿌리로, 초석잠은 뿌리줄기로, 오가피는 껍질로 팔립니다. 부위는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점은 꽃도 잎도 가시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결정적인가.

식약처가 한약(생약) DNA 기원감별 표준절차를 만들면서 밝힌 이유가 정확합니다. 한약재는 기원과 명칭이 유사한 품목이 많습니다. 게다가 절단하고 건조하면 외형만으로 기원종을 구별하기 어려워집니다. 나라별 공정서 사이에 품명은 같은데 기원종이 다른 사례도 존재합니다.

식물을 종 수준에서 가르는 형질은 대개 꽃과 잎에 몰려 있습니다. 꽃받침이 몇 갈래인지, 꽃차례가 어떤 구조인지, 잎이 마주나는지 어긋나는지가 분류의 언어입니다. 그런데 약재로 유통되는 단계에서 꽃과 잎은 이미 없습니다. 남은 것은 뿌리이고, 그마저 잘리고 말라 있습니다. 가시오갈피의 가시가 껍질 가공 단계에서 사라지는 것이 그 전형입니다.

그래서 판별법 개발이 유전자 쪽으로 옮겨 갔습니다. 오가피 판별에 엽록체 DNA가 동원되고, 도라지·더덕·잔대에 표준유전체 해독이 동원된 것은 그 때문입니다. 판별 논문이 계속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눈으로는 갈리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이 문제가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이 하수오입니다. 다만 여기서 짝이 한 번 바뀝니다. 이 글 첫머리의 두 무더기는 큰조롱과 하수오, 곧 과가 다른 쌍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볼 것은 백하수오와 이엽우피소, 곧 같은 협죽도과 안의 쌍입니다. 앞의 쌍은 살아 있으면 유액 하나로 갈리지만, 뒤의 쌍은 살아 있어도 잘 갈리지 않습니다. 백하수오와 이엽우피소는 뿌리 형태로는 식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학술지에 기재돼 있고, 하필 유통되는 부위가 그 뿌리입니다. 이 한 쌍만 따로 파고든 글이 「백하수오·적하수오·이엽우피소, 뿌리로는 구별되지 않는다」입니다.

약전이 쓰는 학명과 지금의 정명이 다르다

지금까지는 시장 쪽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어긋남은 제도 안쪽에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약전이 기원식물로 적어 둔 학명이 현행 정명과 다른 경우가 확인됩니다.

한약재공정서·규제 문서의 학명현행 정명
오가피Acanthopanax sessiliflorum SeemanEleutherococcus sessiliflorus (Rupr. & Maxim.) S.Y.Hu
길경Platycodon grandiflorum A. De CandollePlatycodon grandiflorus (Jacq.) A.DC.
하수오Polygonum multiflorum Thunb.Pleuropterus multiflorus (Thunb.) Turcz. ex Nakai
황칠나무 (식품원료 DB)Dendropanax morbiferus H.Lév.Dendropanax trifidus (Thunb.) Makino ex H.Hara

왼쪽 열은 공정서와 규제 문서에 인쇄된 표기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명명자 표기나 어미를 임의로 손보지 않았습니다. 인용이려면 그래야 합니다.

성격이 조금씩 다릅니다. 오가피는 속이 통째로 바뀐 경우입니다. Acanthopanax는 현재 Eleutherococcus의 이명으로 처리됩니다. 길경은 종소명의 라틴어 성(性)이 어긋난 경우입니다. 속명 Platycodon이 남성형이므로 종소명도 남성형 어미 -us를 써야 하는데 약전은 중성형 -um을 씁니다. 하수오는 속명이 네 번 바뀐 끝에 지금 자리에 온 경우입니다.

황칠나무는 가장 최근의 사례입니다. 정명은 Dendropanax trifidus (Thunb.) Makino ex H.Hara입니다. 오래 통용돼 온 Dendropanax morbiferus H.Lév.는 이명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식약처 식품원료 데이터베이스는 여전히 이명인 Dendropanax morbiferus를 학명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GBIF 백본 분류체계는 아직 D. morbiferus를 유효한 이름으로 유지하고 있어, 어느 데이터베이스를 보느냐에 따라 답이 갈립니다. 국내에서는 이를 종이 아니라 변종으로 보아 Dendropanax trifidus var. morbiferus로 처리한 예도 있습니다. 이런 불일치는 황칠나무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엽우피소도 마찬가지입니다. Plants of the World Online은 Vincetoxicum auriculatum을 정명으로 둡니다. 그런데 국내외 다수 문헌과 식약처 자료는 여전히 Cynanchum auriculatum을 씁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학명은 분류학 연구가 진전되면 바뀌지만, 공정서는 법령이라 개정 절차를 밟아야 바뀝니다. 규제 문서에 적힌 학명을 함부로 고치면 그 이름으로 허가받은 제품과 시험법이 전부 흔들립니다. 그래서 제도는 의도적으로 천천히 움직입니다. 이것은 오류라기보다 서로 다른 시계의 문제이지만, 결과적으로 같은 식물이 문서마다 다른 이름으로 적히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이름이 어긋나면 제도도 어긋난다

이름 문제는 문서 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 식물을 두고 세 개의 제도가 각각 따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공정서에 한약재로 올라 있는가는 대한민국약전과 규격집이 정합니다. 식품 원료로 쓸 수 있는가는 식품의 기준 및 규격이 정합니다.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원료로 인정받았는가는 또 별개의 심사입니다. 셋은 서로를 함의하지 않습니다. 한약재로 공정서에 실려 있다고 식품에 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기능성 원료로 인정됐다고 식품 원료 지위가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름이 어긋나면 세 제도가 한꺼번에 어긋납니다. 초석잠이 그랬습니다. 그 이름으로 팔리는 것 가운데 공정서에 있는 것은 택란 하나뿐이고, 나머지는 애초에 한약재 제도 바깥에 있습니다. 어느 제도가 그 식물을 다루고 있는지는 이름이 아니라 기원식물과 부위로만 확인됩니다. 개별 약초가 각각 어느 지위에 있는지는 이 시리즈의 각 편에서 따로 짚습니다.

이름표 하나로는 부족하다

약초를 고를 때 이름표만 보고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입니다. 대신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학명을 함께 확인합니다. 국명이나 유통명이 아니라 속명과 종소명이 적혀 있는지 봅니다. 학명이 적혀 있다면 조회해 볼 수 있습니다. 국명과 학명이 어떻게 짝지어지는지는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 그 학명이 지금도 정명인지 아니면 이명으로 내려갔는지는 Plants of the World Online에서 확인합니다. 두 곳의 역할이 다릅니다. 이명이라면 어떤 이름으로 통합됐는지도 함께 나옵니다.

한약재명과 식물 국명을 구분합니다. 길경은 도라지의 뿌리이고 택란은 쉽싸리의 지상부입니다. 한약재명은 식물이 아니라 부위까지 포함한 개념이므로, 식물이 맞아도 부위가 다르면 다른 물건입니다.

공적 지위를 개별로 확인합니다. 기능성 원료로 인정됐는지, 인정됐다면 어떤 문구로 인정됐는지, 식품 원료로서는 어떤 지위인지는 종마다 다르고 서로 별개입니다. 식품안전나라에서 원료명으로 조회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개체를 만났을 때는 이야기가 조금 나아집니다. 약모밀은 문지르면 비린내가 나고, 참당귀는 적자색 꽃을 피우며, 가시오갈피는 줄기가 가시로 덮입니다. 꽃과 잎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식물이 스스로 이름을 말해 줍니다. 문제는 그것들이 잘리고 마른 뒤에 시작됩니다. 이 시리즈의 다음 글들이 그 자리를 하나씩 들여다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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